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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운 세계 최대 부호 오병감 스토리

헬시큐브 2023. 4. 11. 23:27


흔히 일반적인 상식으로, 대항해시대 이후로 동양과 서양의 힘이 역전됐다고 생각하는데요. 아편 전쟁이 발발할 당시에도 중국은 세계에 중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영국에서 산업 혁명을 통해 산업 생산성을 향상시켰을 때, 중국에서는 엄청난 인구로 인해 근면 혁명을 통해 산업 생산성을 끌어 올렸습니다.

영국이 청나라에 무역 적자를 보는 것이, 단순히 차 때문이었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당시 중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영국 상품보다 높은 부분도 있었다고 하니, 기술 수준이 인간의 노동력을 극복할만큼 발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중국의 부를 대부분의 차지 하고 있던, 인물이 있었는데요.

2001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10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50인'을 선정했는데, 당시 중국, 아니 세계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병감이라는 인물입니다.

당시, 청나라가 서양과의 무역을 허용한 광저우에는 13개의 민간 무역상들이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 13개의 상단을 거느렸던, 인물이 바로 '오병감'입니다.


당시 오병감이 운영하던 돈이 2,600만 냥 정도였는데, 이 금액은 당시 청나라 조정 1년 수입의 절반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포브스>잡지 발행인의 아버지가 오병감의 양자로 지냈었고, 사업자금을 지원 받아 미국에서 큰 성공을 이루어 냈다고 하며, 거기다가, 노예해방으로 유명한 링컨 대통령에게 많은 후원을 했다고 합니다.

오병감 에게 돈을 대출 받으러온 미국 포브스

이런 대부호를 본다면, 당연히 가문의 재산이 많았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그의 선친이 이화행이라는 무역 행상을 설립 했다는 말도 있고, 아주 낮은 계층  출신이라는 말도 있는데, 과거에는 혈통과 족보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볼 때,  증조부에대한 제대로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미천한 계층이라고 생각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계급의 이동이 꽤나 자유로웠다고 볼 수 있는데요. 특히 동양의 전통적인 과거제도는 계층의 이동을 활발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특정 계층내에서지만요.


■ 아편전쟁과 홍삼 그리고 해삼
오늘은 경제와 역사의 첫번째 이야기로 세계 3위의 금융허브로 통하는 홍콩의 역사속 아편전쟁과 홍삼, 그리고 해삼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1,480년에 영국군이 발발한 아편에의한 전쟁은 세계역사상 가장 치욕적이면서도 더러운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영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손실(당시 영국등 유럽에서는 홍차와 도자기가 최고의 상품이면서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없어서 못살정도로 귀하였기에 영국의 많은 은화가 (중국은 애초부터 금은 황제의 전유물이라 여겨 일반 백성들은 은을 거래하는 은본위제가 자리를 잡았습니다)중국으로 엄청나게 흘러들어가서 영국의 경제가 많이 힘들어지면서부터 발발한 전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 우리가 아는 도자기 본차이나가 이것입니다

China라고 첫글짜를 대문자로 쓰면 중국이고, china라고 첫글짜를 소문자로 쓰면 도자기임

1차 아편전쟁과 2차 아편전쟁으로 영국이모든 권리와 힘을 가지게되었는데, 아편을 너무많이 팔아서 당시 중국인들중에 아편을 안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실정이며 심지어는 관리들까지도 아편에 손을 대서 말그대로 지옥이나 다름없는 중국의 상황이었습니다.

1차 아편전쟁으로 홍콩섬은 영원히 영국령이 되었고 2차 아편전쟁으로 홍콩 위쪽 지방인 신계지역을 100년간 영국에 임대해주는 조약이 체결됩니다. (1982년부터 홍콩의 중국반환 협정이 영국의 대처총리와 중국의 등소평간의 기싸움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영국은 홍콩은 반환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신계지역만을 100년간 임대기간이 종료되었으니 반환하려고 했으나, 등소평이 그러면 홍콩으로 들어가는 모든 전력과 물자의 이동을 막겠다는 강한 협박(?)에 의해 영국의 마음이 바뀌게 되었고, 당시까지 홍콩은 별다른 제조산업이 없이 전세계의 라디오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여 수출하는...당시 전세계의 거의 모든 라디오 제품이 홍콩에서 조립한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처총리가 영국의 장점인 금융산업을 홍콩에 전수하여 중국의 막강한 인력과의 산업에서 홍콩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지금의 홍콩이 전세계적인 금융도시가 된 계기입니다

아편전쟁으로 피폐해진 중국인들에게는 기를 치료하고 아편을 좀더 피우려면 체력을 보강해야 하기에 이때부터 홍삼이 최고의 상품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중국역사상 최고의 갑부이자 세계 최대갑부인 오병감이라는 사람이 네트워크 사업을 통해서 보이차와 홍차를 중국인들에게 많이 보급을해서 건강을 지키게도 만들었지만요. 당시에 홍삼은 너무 귀해서(우리나라 조선에서 전량 수입에 의존함) 일반 국민들은 홍삼을 먹을 방법이 없었고(이 당시의 홍삼의 국내 수출 독점권을 가진 사람이 드라마 거상의 주인공 임상옥입니다)

냉혹한 승부사와 자선사업가 임상옥

임상옥은 국제무역의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또한 임상옥은 냉혹한 승부사 기질로도 명성을 쌓았다. 그가 인삼을 팔러 북경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의 인삼독점을 시기하던 북경 상인들이 인삼불매 동맹을 맺어 거래를 끊어버렸다. 귀국할 무렵 그는 가지고 갔던 인삼 꾸러미를 마당에 쌓아 놓고 불을 질러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청나라 상인들은 임상옥에게 달려와 인삼을 팔라고 애걸복걸했다. 청나라 상인들은 10배나 치솟은 인삼 값을 치르고 사갔다. 아울러 임상옥은 상도의 화신으로 항상 겸손하고 신의를 지킬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산둥반도 지역의 상인들이 (바닷가) 홍삼 대신 값싸고 좋은 상품을 찾다가 우리가 칭하는 바다의 산삼이라는 해삼입니다.(해삼이 홍삼,인삼과 같이 "삼"이 들어가기에 그렇게 칭했습니다)

아무튼 해삼은 공기에 노출되면 바로 흐물흐물해 지기에 보관이나 장거리 운송이 불가능했는데. 이를 우연한 기회에 가성소다(식용소다)에 담구었다가 말리면 나중에 다시 원상복구되는 기막힌 발견을 하면서부터 해삼이 중국 전역에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중국에서 넘어온 짜장면의 면도 수타면이 있지요. 주방장이 좍~좍~당겨도 끊어지지 않고 늘어나고 탄력이 좋은 수타면...이것도 해삼처럼 가성소다를 묻히면 면이 탄력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지금의 수타면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가성소다가 알카리성이기에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을때 나오는 단무지에 식초가 있는 것입니다 (알카리성을 식초의 산성으로 중화)



■ 중국 대륙의 갑부이면서 세계최고 갑부의 반열에 있었던 "오병감"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비화와 스토리가 오병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편전쟁으로 인해
영국에 홍콩과 신계지역을 빼앗겼던 중국은 영국 대처총리와 등소평간의 협상으로 홍콩을 반환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영국이 홍콩의 미래를 위해 영국의 핵심산업인 금융업을 홍콩에 전수하여 지금의 홍콩이 세계3대 금융허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편전쟁 당시에 중국 국민들의 정신적 육체적인 피폐정도는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고, (지금 중국에서는 최고의 형을 받는 범죄가 마약 사범입니다. 살인범보다 더 강하게 마약범은 무조건(?) 사형입니다) 이런 중국 국민들의 육체적인 건강을 보전시키는데 일조를 한 사람이 잘 모르시겠지만 오병감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많이 접하는네트워크(다단계?) 사업을 통해서 수많은 중국 국민들에게 홍차와 보이차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였고 이를 계기로 엄청난 부(富)를 이루게 됩니다.

중국 광저우에 여행을 가시게되면 주강을 보시게 될거고 거기에 안내원이 주강의 빛깔이 은빛색깔을 띤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아편전쟁 당시에 주강에 있었던 오병감의 창고안에 가득한 은(銀)이 있는곳에 큰 불이 나서 모든 은이 녹아서 주강으로 흘러들어갔고 이를 본 모든 국민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정작 오병감은 한밤중에 잠자는데 그깐 불이 난걸로 나의 잠을 깨우냐?라고 할 정도로 배짱과 기가 큰 사람 이었습니다.(물론 다음날부터 물속에서 전부 건져 올렸지만요) 아무튼 이렇게 오병감의 재산이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워런버핏은 비교조차가 안되고 MS그룹의 창시자인 빌게이츠보다도 몇 백배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차 아편전쟁으로 패한 중국에 영국은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는데 오병감이 이 배상금의 90% 를 단 한번에 치루자 영국은 그 많은 은을 가져가지 못하고 오히려 오병감에게 다시 위탁관리를 맞길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오병감은 자식이 없었는데 양아들처럼 보살피던 사람이 있었는데 미국인이었고 그 양아들이 성장 해서 왠만한 그릇이 되자 미국으로 보냅니다.

그 미국인이 포브스 이며, 아들이 포브스 잡지를 창업 하여 명성을 이루게 됩니다

이 아들이 미국으로 돌아와서 손을 댄 첫사업이 미국의 철도산업입니다. 당시에 미국은 철도산업이 국유화가 아니고(지금도 미국은 아닙니다) 개인들의 힘과 권력, 돈으로 치고받는 엄청난 사업이었습니다 여기서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우리가 많이 아는 선박왕 밴더빌트, 철강왕 카네기, 금융과 철도왕 J.P모건, 철도계의 대부 제이굴드...

오병감의 양아들인 포브스는 이러한 철도산업에 오병감으로부터 받은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여 큰 성공을거두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정치판에 기웃거리다가 젊고 유능하지만 돈이 없어 빌빌거리고(?)있던 링컨을 만나게 되어 링컨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되어 차후에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데 일등공신이 됩니다.


※ 참고로 2번째 아편전쟁으로 중국민의 해외로 의 이주가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시기에 엄청난 중국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들이 미국의 대륙간 철도(미국의 서해부터 동부까지 연결하는)를 완성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시에 중국인들이 즐겨먹던 젖갈종류가 있었는데(생선젖갈 종류) 이를 본 미국인이 이 맛을 보고 토마토를 첨가해서 다시 먹어보니 맛이 기가막히게 되고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하인즈" 입니다.

또한 서부로부터 미국의 중간지역까지 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을 하던 회사가 웨스턴 유니언인데 이회사의 대표가 스탠포드입니다. 이 스탠포드의 아들이 철도공사도중

에 피부염으로 엄청나게 고생을 하다가 대륙간 철도의 완공을 못보고 사망하자, 스탠포드가 아들의 업적과 아픔을 기리기위해 지금의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고, 지금도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의 제일 유명한 부분이 피부관련 연구센타 입니다. 그래서 화장품 회사들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인증만 되면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 참고로 미국의 예일대학교는 J.P모건의 친척이 설립하였으며, 하버드대학교는 미국땅에 2번째로 넘어온 영국의 청교도들이 기존 미국의 원주민들의 도움에 감사하고자 지은 학교가 하버드대학교입니다.(이때에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생겨 났으며 이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를 먹는것도 이 청교도들을 도운 미국의 원주민들의 도움이었습니다)   인디안이라고 부르시면 안됩니다

인디안은 콜롬부스가 엉뚱하게 표류하다가 발견한 서인도제도(미국 동부해안, 쿠바근처)를 보고 당시에 가장 유명한 인도라고 생각해서 인도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 J.P모건은 현재의 모건스탠리회사(지금은 일본의 미쓰비시 소유)와 미국 3대은행 중 하나인 모건체이스은행의 소유자이면서도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입니다(흙수저가 아닌 금수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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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인류역사상 가장 큰 부자는? 누구인가요?

1. 로스차일드 가문.머스크, 베프존스
2.록펠러, 빌게이츠, 아람코 사장 등등
3. 징기스칸, 당태종 등등
아마도 이들보다 비교도 안돼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면 한국역사상 가장 큰 부자 2위는 발해의신문왕
3위가 장보고라고합니다

영국정보기관M5에서(007영화모티브)는 이사람의 재산을 이렇게 판단하였습니다

전세계의 돈이 5000만냥이라면 이사람재산은 2640만냥이라고 했습니다
전세계부의 50%가 넘습니다
이사람은 중국의 오병감 입니다

유럽에서 그이후 나타난 로스차일드는 새발의 피 라고 하죠....
그는 청조가 망할수밖에(관리부패)없는것을 알고 아편전쟁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홍콩을 할애 받게하여 자신의 상단에서 약 110여만명을 홍콩으로 이주시킵니다. 이들이 홍콩의 주류가 됩니다. 아울러 11개 상단을 동남아 11개국으로 보내죠  

대부분 성공한 기업인으로 성장시키게 됩니다. 이들이 동남아 화교입니다

중국공상은행이 글로벌 기반을 갖게된것도 이부분 입니다.